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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

차마룡

고풍스러운 민간 무용 “차마등”은 청나라 중엽에 기원하였고 현재까지 무려 170여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청대의 진개붕이 당대의 “이단이경문”의 역사스토리를 배경으로 편성한 전통 민간 무용입니다. “차마등” 공연자는 모두 10명이고 전체 공연은 동그라미 돌기, 순매, 도매, 8자걸음, 결등 등 각종 대형 변화를 위주로 노래와 방백을 곁들입니다. 군무 반주 음악은 일종 열렬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며 노래와 방백 반주 음악은 짙은 감남 채다희의 특색이 있습니다. 찬사 사령은 모두 “해마다 순조롭고, 오곡이 풍성하며 대대손손 부귀영화 누리네”와 같은 상서로움의 사령으로, 농민들의 염원에 어울리며 짙은 생활의 정취가 슴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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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산채다희

구룡산채다희는 구룡산의 차 따기 가무 「차람등」으로부터 발전해 왔습니다. 일찍 명조시기 안원 구룡산에서 나는 차는 “짙은 향과 맛”으로 원근에 소문이 높았고 청나라 강희, 옹정 연간에 와서는 크게 발전하여 구룡차는 공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안원 구룡산은 당시 강남의 주요 차 생산 구역중 하나였으며 해마다 양춘 3월이면 강서, 광동, 복건 등 각지의 차 상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습니다. 차녀들이 차를 딸 때면 「12월 채차가」를 즐겨 불렀는데 당지의 마등, 용등 등 민간 초롱의 영향을 받으면서 차광주리, 종이부채 등 도구가 늘어났고, 따라서 차채가와 당지 민간 초롱이 결부되어 가무가 곁들여진 민간 초롱인 채차등으로 변화하였는바 일명 「차람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역대 예술인들의 부단한 연역을 거쳐 「차람등」은 간단한 스토리 정절과 인물의 “채차소희”로 발전하였고 공연 인물은 단 세명 즉 2단1축 뿐이어서 속칭 “삼각반”이라 불렀습니다. 구룡산 채다희의 가장 이른 연극 모식이었습니다. “삼각반”은 산 위에서부터 산 아래까지 간단한데로부터 복잡하기까지 점차 오늘의 지방 특색이 다분한 지방 연극——구룡산 채다희로 발전하였습니다.

수백년간 근면한 객가인들은 노동이라는 언어로 오늘과 같은 즐거움과 아름답고 독특한 구룡산 채다희로 변화시켰습니다. 채다희는 차로 인해 나타났고 그로 인해 노래, 연극으로 발전하였는바 구룡산 채다희의 탄생은 객가인들 속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졌습니다.

 

남향 대당음악

안원 남향 대당음악은 풍부한 인문적 가치와 예술적 매력을 내포하였으며 사람들이 생산과 생활 과정에서의 창작을 통해 점차 형성된 음악으로 주로 혼례와 장례, 편액 등 경조사 행사에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공전진은 남향 대당음악의 발원지입니다. 역사 기재에 따르면 기원 1168년 공전진에는 동림사가 세워져 있었는데 위치상 현재의 상채촌이었습니다. 이곳은 일찍 향객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든 곳으로 사원에는 승려 10여명, 취고수 여러명이 있었습니다. 1952년, 동림사는 화재가 발생하여 폐허로 되었습니다. 묘에 있던 승려는 사처로 흩어졌고 취고수 역시 귀가하여 농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후 농민들이 경조사 행사에서 취고수를 청하여 불교음악을 연주하게 함에 따라 몇대의 예인들의 전수와 발전을 거쳐 마지막에는 안원 남향 대당음악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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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 대당음악은 곡비, 연주악곡, 연주방식을 물론하고 모두 기타 악기와 달랐습니다. 보통 수르나이를 위주로 하고 이호, 피리, 관악기, 양금 등 악기를 결부하였고 기타 타악기는 없습니다. 연주 방법은 즉흥 연주이고 수르나이로 수선율을 연주하고 다양한 정현, 높낮이가 다양한 즉흥 연주를 보조로 하며 여기에 피리의 주음가화, 이호 등 악기를 더하고 연주시 가화로 받쳐주면서 각종 악기의 특장을 발휘하면서도 악기수의 개인 공연 수준과 풍격도 잘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주요 연주 악기 수르나이와 기타 지역의 수르나이는 달랐고, 수르나이 호루라기는 유동나무 위의 일종 벌레고치를 사용, 겨울에 채집한후 장기 보관하여 밝고 정서적인 음색을 낼수 있었는바 안원 민간 예술인들의 독창적인 방법에 속합니다. 2007년 6월, 남향 대당음악은 강서성 제2회 민간음악류 비물질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